갈라디아서 2 장 | 갈라디아서 2장 533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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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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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

할례자의 사도와 이방인의 사도 ·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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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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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 | RNKS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갈라디아서 2. 2. 예루살렘 회의. 1그 다음에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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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8/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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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 KLB;NIV – 바울과 다른 사도들 – Bible Gateway

2 그로부터 14년 후에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습니다. 2 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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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9/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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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성경 갈라디아서 02장 – HANGL NOCR

2:1 <다른 사도들을 만나다>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갔습니다. 2:2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하나님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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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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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 – Korean Living Bible (KLB) – Biblica

갈라디아서 2:1-21. 바울과 다른 사도들. 1그로부터 14년 후에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습니다. 2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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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ica.com

Date Published: 12/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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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9월 26일. 갈라디아서 2장. – 하늘품은교회

갈라디아서 2장. 이신칭의의 복음을 양보할 수 없다. 1. 사도 바울은 회심 후 14년째 되던 해, 바나바와 디도를 대동하고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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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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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갈라디아서2장 바울이 사사로이 제시한 복음 – Pensées

갈라디아서 2장은 2:11에서 시작된 사도직 변증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2장을 1-10까지와 11-21절까지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서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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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392766.tistory.com

Date Published: 6/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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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 교사용]

갈라디아서 2장. 1.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사역을 한 후 떠났던 1차 전도여행 기간은 약 4년이다(AD 46-49). 이 여행 말미에 예루살렘을 방문했다(행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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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8/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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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1절-21절, 매일성경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

갈라디아서 2장, 현대인의 성경. 1 그로부터 14년 후에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 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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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8/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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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갈라디아서 2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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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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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

할례자의 사도와 이방인의 사도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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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루살렘 회의

1 그 다음에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 와 함께 디도 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 으로 올라갔습니다. 2 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3 나와 함께 있는 디도 는 그리스 사람이지만,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4 몰래 들어온 # 그 , ‘거짓 형제들’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여든 자들입니다. 5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6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유명한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7 도리어 그들은, 베드로 가 # 유대 사람을 가리킴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 이방 사람을 가리킴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8 그들은, 베드로 에게는 # 유대 사람을 가리킴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 이방 사람을 가리킴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9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 와 # 베드로 게바 와 요한 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 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 유대 사람을 가리킴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10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안디옥에서 바울이 게바를 나무라다

11 그런데 # 베드로 게바 가 안디옥 에 왔을 때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그를 나무랐습니다. 12 그것은 # 베드로 게바 가, # 또는 ‘ 야고보 가 보낸’ 야고보 에게서 몇몇 사람이 오기 전에는 #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계 그리스도 인들을 가리킴 이방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그들이 오니, 할례 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입니다. 13 나머지 유대 사람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하였고, 마침내는 바나바 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갔습니다. 14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 베드로 게바 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 해석자들에 따라, 인용을 21절까지 확대하기도 함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다

갈라디아서 2 KLB;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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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Copyright ©1973, 1978, 1984, 2011 by Biblica, Inc.® Used by permission. All rights reserved worldwide.

NIV Reverse Interlinear Bible: English to Hebrew and English to Greek. Copyright © 2019 by Zondervan.

쉬운성경 갈라디아서 02장

2:1 <다른 사도들을 만나다>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갔습니다.

2:2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따로 만나서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전에 한 일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2:3 나와 함께 있던 디도는 비록 그리스 사람이지만 나는 그에게 억지로 할례를 베풀지는 않았습니다.

2:4 우리 가운데 거짓 형제들이 몰래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다시 율법의 종으로 만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엿보려고 정탐꾼처럼 끼어들었습니다.

2:5 그러나 우리는 그 거짓 형제들의 뜻을 조금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가 늘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바랐습니다.

2:6 저 귀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가 전하는 복음을 바꾸지 못했습니다(그들이 귀한 사람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2:7 오히려 그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 것처럼, 내게도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8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유대인을 위해 사도로 일할 권리를 주셨고, 내게는 이방인을 위해 사도로 일할 권리를 주셨습니다.

2:9 지도자로 인정받던 야고보와 베드로 와 요한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특별한 은혜를 깨닫고, 바나바와 나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여, 그대들은 이방인에게 가십시오. 우리는 유대인에게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10 그들은 우리에게 한 가지, 곧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것은 사실 내가 힘써 해 오던 일입니다.

2:11 <바울이 베드로를 나무라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 그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내가 그를 대면해서 나무랐습니다.

2:12 베드로가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있는데,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오자 먹는 것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서 물러갔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2:13 이처럼 베드로는 거짓된 행동을 했고, 다른 유대인 성도들도 거짓된 행동을 했습니다. 심지어 바나바조차 그들의 거짓된 행동에 유혹을 받았습니다.

2:14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를 향해 “베드로여, 당신은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처럼 살지 않고 이방인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처럼 살라고 합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2:15 우리는 이방인, 곧 ‘죄인’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태어났습니다.

2:16 하지만 우리는 율법을 따른다고 해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이지,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2:17 우리 유대인은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그리스도께 나아왔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으로 만드시는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2:18 내가 이미 헐어 버린 모세의 율법을 다시 가르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내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2:19 나는 율법을 위해 사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나는 율법에 의해 죽었습니다. 내가 율법을 향해 죽은 것은 하나님을 향해 살기 위한 것입니다.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내 몸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하시려고 자기 몸을 바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매일말씀묵상. 9월 26일. 갈라디아서 2장. > 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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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이신칭의의 복음을 양보할 수 없다.

1. 사도 바울은 회심 후 14 년째 되던 해 , 바나바와 디도를 대동하고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섬긴지 1년쯤 지났을 때였을 것입니다. 방문의 목적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안디옥 교회의 헌금을 전해 주려는 것이었습니다(행 11:30). ‘계시를 따라’ 올라갔다는 말은(2), 아가보 등이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있을 것을 예언한 일을 가리킬 것입니다(행 11:27~28). 사도 바울은 이 때 유명한 사도들 즉 베드로 , 요한 , 야고보 같은 이들에게 개인적 차원에서 자기가 전하는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 이 만남은 나중에 열린 예루살렘 공의회와 같은 성격의 공적 회의가 아니었습니다(행 15). 사도가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수고가(특별히 이방인들을 위한) 헛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2. 사도는 이때 자기가 전하는 복음에 맞게 행동하기 위해 , 의도적으로 헬라인 디도가 할례를 받지 않게 하였습니다 (3). 이것이 ‘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 에 의해 문제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엿보고 신자들을 종으로 삼으려는 자들인데,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혔던 자들과 같은 이들입니다(4). 만일 사도 바울이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한 번이라도 양보했다면, 그것은 복음의 진리를 거스르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5).

3. 갈라디아 사람들은 유명한 사도들의 이름을 많이 의식했는데 , 그 유명한 사도들이 사도 바울에게 전해 준 것은 없습니다 (6). 도리어 베드로와 바울은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는 영역을 나누었고(7~8), 사도들 사이에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이견이 없었습니다(9). 오직 하나의 복음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도들은 바울 사도에게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이방인 교회들로부터 모금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을 뿐입니다(10).

4. 하지만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했을 때 문제가 터졌습니다 (11). 당시 교회는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을 때 그들에게 어떤 요구를 할 것인가의 문제로 ,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 사이에 어느 정도의 긴장이 있었습니다 . 이 때 베드로가 안디옥을 방문했는데,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신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최초의 교회였습니다. 이방인 신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던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의 보냄을 받은 유대인 신자들을 보자(이들은 사실 야고보의 보냄을 받은 자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많다, 행 15:24), 갑자기 식사 자리를 떠나는 위선을 행했고, 이것은 바나바와 다른 유대인들의 마음에도 유혹이 되었습니다.

5. 이것을 본 바울은 공중 앞에서 베드로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는데 , 이 행위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이것은 이신칭의의 진리 , 즉 복음의 핵심을 삶으로 부인하는 행위와 같았습니다 . 베드로의 행위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감히 베드로를 면전에서 그리고 공중 앞에서 책망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바울의 책망 앞에서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을 기록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했기에 초대교회는 분열 대신, 복음의 진리 안에서 하나로 공고하게 세워져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6. 이처럼 칭의 교리는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모든 차이를 무효화합니다 . 오직 믿음으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16). 복음 앞에서, 그리고 완전한 거룩하심 가운데 계신 하나님 앞에서는, 도덕군자나 살인자나 모두 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이렇게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이신칭의 교리는 언제나 반대를 받아왔습니다. 반론의 핵심은 이 교리가 삶의 행위를 간과하여, 오히려 죄를 조장한다는 것입니다(17). 이신칭의 교리만 믿다가 심판 날에 죄인으로 드러나면 어쩔 것이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결코 자신이 이전에 믿던 유대교가 가르쳤던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이행칭의의 교리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며, 다 허물었던 그 교리를 다시 세우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18).

7. 사도는 이신칭의 교리로부터 네 가지 원리를 도출합니다 (20). 1) 나는 율법을 향하여 죽었습니다 . 나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켜주는 방법으로서의 율법은 파괴되었고, 나는 그런 칭의의 수단으로서의 율법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죽었다). 나는 이제 율법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살려면 율법의 행위에(자존심, 자기의)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2)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 그리스도와 별개로 이루어지는 구원은 구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나도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죄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3)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 것입니다 .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연합의 교리는 이신칭의 교리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보시고 나를 판단하십니다. 4)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 비록 칭의의 선물을 받았지만 우리는 육체를 입고 삽니다. 구원 얻는 믿음의 참된 특성은 인내하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한 철, 한 때의 믿음이 아닙니다.

8. 갈라디아 사람들이 계속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복음을 따라가려 한다면 ,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헛되고 욕되게 하는 ,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 “칭의의 교리를 잃어버리면 기독교 교리 전체를 잃어버리는 것이다”라고 마르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또 토마스 크랜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신칭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영광을 드러내고 인간의 헛된 영광을 뒤엎는다. 이를 부인하는 자마다 진정한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한 적수이며 인간의 헛된 영광을 드러낸다.” 이 은혜의 복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 이 은혜의 복음을 더 알게 해주시기를 구하십시오 . 그리고 이 은혜의 복음의 진리에 합당하게 살기를 구하십시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행위로 의로울 수 없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저희를 구원하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은혜의 복음을 더 깊이 알게 하시며, 이 진리에 합당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직 십자가의 영광만을 드러내며 사는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별설교] 갈라디아서2장 바울이 사사로이 제시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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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갈라디아서2장 바울이 사사로이 제시한 복음

갈라디아서 2장은 2:11에서 시작된 사도직 변증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2장을 1-10까지와 11-21절까지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서론에서 바울은 자신이 계시에 따라 예루살렘 올라간 이야기를 합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복음대로 살지 않는 베드로를 바울이 책망한 이야기를 함으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정당성을 논증합니다.

1. 1-10절 두 그룹의 사도와 합의

2. 11-21절 베드로를 책망한 바울

1. 1-10절 예루살렘 방문에 복음을 제시하다.

바울은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간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전해 받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어떤 시기를 기점으로 ‘십사 년 후’(1절)에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올라간 이유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울을 호출했기 때문이 아니라 ‘계시를 따라’(2절) 올라갔습니다. ‘계시를 따라’ 올라갔다는 말은 주님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 명령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들에게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제시’(2절)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제시하되 ‘사사로이’ 했다고 말합니다. 즉 공적이 아니라 사적인 것으로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었다는 말입니다. 약간 의아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사도들의 허락을 받거나 인준을 받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베드로를 할례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자로, 자신을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자로 하나님께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사도가 되는 것은 교회의 선택이나 훈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모든 직분이 하나님께 기원이 있기는 하지만 사도직은 다른 직분에 비해 좀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소명에 의한 것임을 드러내 줍니다. 바울이 제시한 복음을 듣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친교의 악수’를 했습니다.(9절)

또 하나는 3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헬라인 디도에 관한 문제입니다. 바울은 헬라인 디도를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갔음에도 그는 억지로 할례를 시키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왜냐하면 할례를 받지 않고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습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할례를 시키지 않는 이유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4절)이었습니다. 거짓 형제 또는 거짓 교사들의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4절 하)이었습니다. 바울은 5:1에서 다시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유는 율법으로 인해 오는 육신의 탐욕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이 부어지고, 그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3:17을 보십시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이 자유는 이전처럼 죄의 종이 아니라 아들이 갖는 자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가 이끄는 대로 죄를 짓고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 애굽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부르시고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이제는 종이나 노예가 아니라 아들입니다. 호세아 11:1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11: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종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을 받을 수 있고, 당당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직접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간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들이 누리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거짓 형제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었지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가만히 들어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자유를 빼앗아 내 던졌습니다.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들의 종으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5:10에서는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2. 11-21절 베드로를 책망한 바울

바울은 이제 중요한 한 가지 사건을 언급합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때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12절 말씀에 의하면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는 이방인들과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다 야고보에서 온 사람들을 발견하고 이방인들과의 식탁을 급하게 벗어나 도망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왜 문제일일까요? 먼저 야고보라는 인물을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유대적 전통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해 봅시다.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유대 전통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닙니다. 여전들이 그들은 이방인들과 식탁교제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식탁교제를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분과 혈통이 무너지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하나의 민족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갈라디아서 다음 성경인 에베소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에베소서 2:11-18]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복음은 혈통과 민족, 신분과 성별을 너머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방인들과 함께 거리낌 없이 식탁교제를 나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야고보에서 사람들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게 율법을 따라 행하던 본성에 의해 이방인들과의 식탁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바울은 베드로를 향해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비판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먼저는 베드로는 유대인답게 살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 행동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강압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고 따집니다. 그리고 나서 16절에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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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1절-21절, 매일성경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설명과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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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현대인의 성경

1 그로부터 14년 후에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 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기쁜 소식을 공식 석상에서 전하였고 지도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과거에 한 일과 현재 하는 일이 헛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습니다.

3 나와 동행한 디도는 그리이스 사람이었지만 억지로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4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몰래 들어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다시 율법의 종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5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을 언제나 기쁜 소식의 진리 안에 있게 하려고 한시도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6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제시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건간에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양을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7 그들은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같이 내가 이방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보았습니다.

8 베드로에게 능력을 주어 그를 유대인의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을 주어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것입니다.

9 그리고 기둥 같은 지도자로 알려진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10 또 그들은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부탁했는데 그 일은 내가 전부터 열심히 해오던 일이었습니다.

11 그런데 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 그가 잘못한 일이 있었으므로 나는 여러 사람 앞에서 그를 책망하였습니다.

12 그것은 그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 몇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나가 버린 일이었습니다.

13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도 안 먹은 체하며 밖으로 나갔고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유혹을 받았습니다.

14 그래서 나는 그들이 기쁜 소식의 진리대로 바로 살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에게 `유대인인 당신이 이방인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방인에게는 유대인답게 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고 책망했습니다.

15 우리는 날 때부터 유대인이지 소위 말하는 `이방 죄인’이 아닙니다.

16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되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사람은 없습니다.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고 하다가 우리 자신이 죄인으로 판명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18 내가 이미 헐어 버렸던 율법의 체계를 다시 세운다면 나는 율법을 범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19 나는 율법에 관한 한 율법 그 자체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 살기 위해서입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다. 지금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21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귀중합니다. 만일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설명과 요약

2장 5절, 순종, 새벽설교를 위한 더 깊은 말씀묵상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는 거짓 신자들을 따르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혹시 나중에 거짓으로 판명된 가르침을 따른 적은 없었습니까? 어떤 영성 훈련이 잘못된 가르침을 피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2장 7절,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이 독특하게 ‘각자에게 맡겨진’ 복음 사역을 감당하고 있음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가 ‘다름’으로 인해 분열하지 않고 연합하게 됩니다.

2장 10절,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우리는 변화됨으로써 자유로우며, 특별한 사역으로 인도하시는 성령께 순종하는 것에도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주변에 있는 연약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심을 나타 내는 확실한 척도가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은 근검, 기부, 봉사, 영성 개발을 위한 기본 활동들을 실천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2장 11절-14절, 친구에게 올바른 것을 말해주기, 새벽설교를 위한 더 깊은 묵상

우리 모두는 친구가 필요하고 또 친구들이 있습니다. 비록 친구가 때로 옳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 친구와 함께 잘 지내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 볼 일이 있습니다. 만일 친구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그냥 모르는 체하고 넘어가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잘못을 말해 주는 것이 더 나은 일인가요?

갈라디아서 2장 11-14절 부분을 읽어 보십시오. 바울은 친구 게바(베드로)의 잘못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충고였습니다. 만약 우리도 바울의 본보기를 따른다면, 우리의 친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랑의 충고를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참된 친구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2장 14절,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 아니함을 보고

‘복음의 진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복음의 진리’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영성에 있어서 ‘명민함’ (discernment)이라고 합니다.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되지만 비복음적인 말이나 행동은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이 명민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2장 16절,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복음적인 자유의 삶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고 또 무엇을 하고 계신지 의지하는 믿음에서 생겨나고, 또 유지됩니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세 번 ‘율법의 행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믿음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려는 행위,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업적, 형식주의 그리고 율법주의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자유하게 되며 완전히 변화될 수 있습니다.

2장 16절,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새벽설교를 위한 더 깊은 묵상

마르틴 루터는 수도원 생활 7년 동안 남보다 더 기도하고 더 금식하고 더 철저히 규칙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기쁨과 감사는 없고, 죄책감만 더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루터는 로마서를 비롯한 바울의 여러 서신을 통하여 바울의 신학을 연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1510년, 로마에 간 루터는 성 베드로 사원의 ‘거룩한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온맘으로 고행을 수행하던 그 때, 루터의 뇌리를 파고드는 성경 구절이 있었습니다.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

그 때 루터는 일어나 더 이상 고행의 삶을 통해 의롭게 되기를 포기하고, ‘오직 믿음으로’라는 기치 하에 힘차게 종교 개혁의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2장 19절-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구절을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함께 십자가를 지다'(cocrucified)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에 대해 놀랍도록 대담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과 같은 시간에 십자가에 매달린 두 강도에게 사용한 말입니다(마 27:44; 막 15:32; 요 19:32).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완전하고도 즉각적인 연합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옛 삶은 끝나고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이러한 내적 실재(reality)는 시간이 지나면서 외적 증거, 곧 성령의 열매들로 나타날 것입니다.

갈라디아 민족

갈라디아 민족은 주전 3세기에 중부 유럽에서 소아시아로 이주한 켈트족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 시대에는 갈라디아라는 로마 속주가 있었는데, 원래의 민족 지역보다 더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인종적으로는 갈라디아 인들이 아닌 남쪽의 영토도 행정적으로는 갈라디아 지역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말한 갈라디아라는 말이 인종적으로 갈라디아인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지방을 가리키는가는 갈라디아서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세기까지의 일반적인 견해는 바울이 “북갈라디아” 즉 이 지방의 북부에 위치한 갈라디아 민족에게 보낸 편지가 갈라디아서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갈라디아” 이론이 더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바울이 이 지역의 남부 지역에 있는 교회들, 즉 첫 선교 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에 편지를 썼다는 것이고 나중에 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십사 년 후에(2:1) : 바울의 1차 예루실럼 방문 후 14년이 지난 때를 가리킵니다.

유력한 이들(2:6) :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을 위시한 예루살렘 교회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의롭다 함(2:16) : 법정용어로, ‘의롭다고 선포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2:17) :‘아담 안에서’라는 표현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을 이루어 구원과 영생 가운데 있는 상태를 지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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